프론티어노트
FIELD NOTE · Issue 09 · 2026. 10. 30.

전화는 걸었다

10월 27일, 특정 업무의 취소 절차를 알아봐야 했다. 담당자에게 직접 연결해 절차를 묻는 일이 귀찮았다. 실제 취소를 처리해달라는 게 아니라, 절차를 물어 답을 받아오면 됐다. 그 정도면 맡겨볼 만했다. 그래서 피클에게 전화를 맡겼다. 통화 기록 화면에는 이런 말이 남아 있다.

피클 통화 기록에 취소 절차와 담당자를 묻는 말이 표시된 화면
10월 27일 취소 절차 문의 통화 기록

취소 절차를 확인하려고 하는데요. 이 건을 담당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피클의 말풍선이다. 바로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AI가 뭔가 썰라썰라 말하고 있어.

이 건을 담당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상대방은 AI를 언급한 뒤 전화를 끊었다. 화면에는 담당자를 찾는 질문이 두 번 남았다.

피클은 개인 AI 비서다. 나는 여러 기능 가운데 한국어로 대신 전화해준다는 기능에 먼저 관심이 갔다. 나를 이해하고 일상을 챙겨준다고 하면, 나는 우선 무엇부터 알려줘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대신 전화해준다는 말에는 당장 맡길 일이 떠올랐다.

나는 한국 시장에서 한국어로 전화를 대신 걸어주는 기능이 꽤 괜찮은 PMF의 실마리라고 생각했다. 시험 삼아 시킬 일을 고른 것도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썼다. 이런 문의를 잘 처리하면 다음에도 맡길 생각이었다.

상대방에게 같은 앱을 설치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았다. 상대의 시스템이 내 비서와 연결되는지 알아보는 대신, 기존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됐다. 내 쪽에만 비서를 두고도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피클에게 물을 내용을 알려줬다. 피클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받았다. 여기까지는 내 일이었다. 그다음은 상대방이 피클의 질문을 듣고 답할지에 달렸다.

10월 29일에는 다른 전화를 맡겼다. 이번에는 커뮤니티 공간을 예약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었다. 그사이 다른 목적으로 여러 통화를 더 시도했다. 사람들이 스팸 전화로 생각하고 끊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서, 피클에게 스팸 전화가 아니라고 먼저 말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통화 기록에는 실제로 ‘스팸 전화 아니고요’라는 말이 남았다. 피클은 다음 주 월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회의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상대방은 어떤 회의실을 말하는지 되물었다. 피클은 정확한 명칭을 모른다고 답하면서 입주민 커뮤니티 회의실이 몇 개 있는지 물었다.

상대방은 오픈 스터디룸을 제안했다. 좌석은 여섯, 일곱 개 정도이고 예약은 지정된 관리 앱에서 해야 한다고 했다. 예약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지도 최종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공간을 알아봐야 하고 어디서 예약해야 하는지는 알게 됐다.

나는 그 통화 기록을 AI 연구회 단톡방에 올렸다.

잡일시켜보는데 생각보다 잘함

ㅋㅋㅋ

물론 받는 사람이 스팸인줄알고 끊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래서 스팸아니라고 강조하고 대화시작하니까 되긴하는듯ㅋㅋ

다른 참가자: ㅋㅋㅋㅋ

처음에는 AI 전화를 받는 사람들이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속 써보니 내가 먼저 첫마디를 고치고 있었다. 첫 통화가 끊긴 뒤, 다음 전화의 첫마디를 바꿨다. 내가 적응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문의를 대신해주는 비서는 계속 쓰고 싶다. 한 통화는 담당자를 찾는 말 앞에서 끊겼고, 다른 통화는 어떤 회의실인지 묻는 질문에서 이어졌다. 그사이 내가 고친 건 피클의 첫마디였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 전화를 어디까지 자기 일로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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