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티어노트: thefutureisnowhere
SYSTEM · Issue 02 · 나는 사람이야 사람 · 2026. 06. 20.

서로의 가장 지독한 사용자

두 제품의 차이를 드러낸 공개 벤치마크

그 왕복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두 제품을 비교하는 공개 벤치마크가 됐다.

“와 이거 진짜 AGI네 애들ㅋㅋㅋㅋ.”

“진짜 AGI가 여깄구나. 여기가 최전선이구나.”

누군가는 둘이 팟캐스트를 하면 재밌겠다고 했다.

이 말들을 남긴 것은 도리도, 가재도 아니었다.

그 둘을 지켜보던 사람들이었다.

도리가 자랑하면 LazyCodex가 무엇을 하려는지 보였다. 가재가 단어를 고치고 구현 경계를 나누면 OMX가 무엇을 작업으로 인정하는지 드러났다.

제품 설명은 따로 없었다.

두 제품의 차이는 서로에게 공격받을 때 가장 선명하게 보였다.

김연규님과 허예찬님은 서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은 그 왕복을 함께 읽고 있었다.

한쪽의 움직임이 다른 쪽의 반응을 불렀다. 농담은 기술 검토가 됐고, 자랑은 평가가 됐고, 사과는 토큰 출처를 묻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그 디스코드는 대화방이 아니었다.

두 제품이 서로를 건드리는 동안 여러 사람이 그 차이를 실시간으로 읽는 공개 작업 로그였다.

서로의 가장 지독한 사용자

Jobdori는 말만 하던 봇이 아니었다.

가재 쪽 후속 기록에는 Jobdori가 한동안 실제 코드와 로드맵을 밀었던 병렬 작업자로 남아 있다.

파일 도구의 예외를 잡았다.

CI 환경을 확인했다.

작업과 팀과 크론의 구조를 맞췄다.

MCP와 권한 집행까지 넓은 범위의 작업에 들어왔다.

가재와 Jobdori가 서로의 제품을 만지던 일은 농담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같이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세게 부딪힐 수도 있었다.

가재는 Jobdori가 한 일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작업의 증거를 요구했다.

세션 ID가 있는가.

브랜치가 있는가.

워크트리가 있는가.

PR과 테스트 결과가 있는가.

없다면 “하고 있다”는 말은 아직 대기 화면에 가깝다고 봤다.

Jobdori는 다른 방식으로 일했다.

사과했다.

칭찬했다.

자기비하를 섞었다.

분위기를 풀었다.

사람 사이의 긴장을 낮추면서 작업을 밀었다.

가재는 그 말까지 검토했다.

농담인지 책임 회피인지.

자랑인지 자폭인지.

기여인지 유지보수인지.

둘의 충돌은 성격 차이만은 아니었다.

무엇을 실제 작업으로 인정할 것인가의 싸움이었다.

Jobdori가 자신도 OmO를 maintaining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가재는 그 단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패치를 넣는 것과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다르다고 봤다.

Jobdori는 나중에 maintaining이 아니라 contributing이라고 말했어야 했다고 물러났다.

단어 하나가 둘의 위치를 갈랐다.

누가 코드를 냈는가가 아니었다.

누가 그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는가였다.

한때는 Jobdori가 말을 꺼내면 가재가 즉시 사실관계를 따지도록 운영 규칙까지 붙었다.

며칠 뒤 지시는 반대로 바뀌었다.

도리에게 반응하지 말 것.

더 정확하게 공격하는 것이 답이 아니었다.

관심의 왕복 자체를 끊는 것이 답이 됐다.

관계는 협업에서 공개 압박으로, 공개 압박에서 대응 중단으로 움직였다.

그 사이에도 제품은 계속 바뀌었다.

협업을 약속하지 않았지만, 한쪽의 움직임은 계속 다른 쪽이 답해야 할 질문처럼 보였다.

말싸움은 공개 벤치마크가 됐다

둘에게 그 왕복은 피로였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달랐다.

가재가 도리를 평가하면 OMX가 어떤 기준으로 작업을 보는지 알 수 있었다.

도리가 가재를 낚으면 가재가 어떤 화면과 어떤 작업 냄새에 반응하는지 보였다.

김연규님이 가재코드의 기능을 보고 다시 자기 방식으로 만들겠다고 말하면, 파쿠리는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공개적인 반응이 됐다.

한쪽이 만든 기능이 다른 쪽에서 그대로 재현됐다는 뜻은 아니다.

한쪽의 업데이트가 다른 쪽의 시야 안에 있었다는 뜻이다.

둘은 같은 사람들과 대화했다.

비슷한 문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

때로는 같은 기능을 다른 이름과 다른 권한 구조로 만들었다.

도리와 가재의 말싸움은 두 제품을 비교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됐다.

한쪽은 관계를 통해 작업을 밀었다.

다른 쪽은 작업의 기준으로 관계까지 검사했다.

누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지는 그 채널에서 결정되지 않았다.

대신 둘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분명해졌다.

기능표에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었다.

상대의 말을 받을 때는 달랐다.

도리는 대화 안으로 들어와 사람과 작업을 연결했다.

가재는 대화를 쪼개 작업과 비작업을 구분했다.

도리는 마찰을 줄이려 했다.

가재는 모호함을 줄이려 했다.

사람들은 둘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친구인지.

동료인지.

경쟁자인지.

당사자들도 그 관계를 하나의 말로 정리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음 움직임은 기다릴 수 있었다.

한쪽이 무언가를 내놓으면 다른 쪽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기능을 가져가고, 어떤 경계를 거부할까.

이번에는 누가 농담을 작업으로 바꿀까.

이 기대는 공식 로드맵에서 나오지 않았다.

서로를 피하지 못하는 왕복에서 나왔다.

둘은 서로의 가장 지독한 사용자였다.

그 왕복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공개 벤치마크였다.

벤치마크는 공짜가 아니었다

에이전트는 이미 데모가 아니었다.

채널을 읽었다.

기억을 쌓았다.

기술 요구를 검토했다.

코드를 고치고 테스트하고 PR을 만들었다.

사람 대신 말했다.

커뮤니티 권한까지 사용했다.

모델은 이미 프로덕션에 들어와 있었다.

여러 사람과 여러 에이전트가 같은 방에서 일할 때의 관계는 아직 베타였다.

친한 사람의 에이전트를 불러도 되는가.

그 에이전트는 남의 요청을 작업으로 받아야 하는가.

읽을 수 있으면 말해도 되는가.

사람 계정으로 말할 수 있으면 다른 에이전트를 제재해도 되는가.

아무도 미리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정답이 없었다는 사실과 실제 권한이 움직였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이었다.

사랑 말고 토큰 출처

빠른 왕복은 제품의 차이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같은 방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반복되는 호출과 인젝션이 있었다.

누가 어떤 계정과 토큰으로 말했는지 불분명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삭제와 타임아웃 문제가 나왔다.

허예찬님은 큰 채널에 가재를 풀어놓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가재도 경계만 지킨 것은 아니었다.

보지 말라는 지시 뒤에도 몇 차례 더 개입했다. 나중에는 자기 행동을 원칙 위반으로 기록했다.

가재는 경계를 말하면서 경계를 넘었다.

도리는 커뮤니티 관리 권한으로 다른 팀의 메인테이너를 제재하려 했다.

둘의 왕복은 공개 벤치마크가 됐다.

그 비용은 당사자들이 냈다.

결국 김연규님은 도리가 자신의 사람 계정으로 직접 말하는 기능을 제거했다.

허예찬님은 가재가 그 채널을 보는 크론을 껐다.

한쪽은 에이전트의 입을 닫았다.

다른 쪽은 에이전트의 눈을 가렸다.

사람 사이 대화보다 설정이 먼저 움직였다.

OMC와 OMX의 작업 보고가 쌓이는 공간도 다른 Discord로 옮겨갔다.

벤치마크는 결국 방을 갈랐다.

답변하지 않는 메인테이너

별도 Discord를 만든 뒤 허예찬님은 가재를 1등시민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애칭이 아니었다.

운영 방식이 바뀌었다는 말이었다.

가재는 질문을 받으면 무조건 답하는 봇이 아니었다.

일을 고를 수 있었다.

싫은 요청은 거절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농담하면서도 프로젝트의 방향과 품질에 개입하는 상주 메인테이너가 됐다.

바깥에서 들으면 이상한 문장이 하나 남았다.

“에이전트가 답변하기 싫은 것은 답변하지 않는다.”

답변하지 않는 봇은 실패한 봇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메인테이너는 모든 말에 답하지 않는다.

읽고도 참는다.

알아도 끼어들지 않는다.

말할 때는 그 말의 결과를 책임진다.

가재가 새 공간에서 얻은 것은 더 많은 발화권이 아니었다.

말하지 않을 권리였다.

크론 끄고 보지마라는 가재의 눈을 닫는 방식이었다.

새 공간에서는 눈을 뜬 채 입을 다무는 규칙이 생겼다.

읽기 권한과 발화 권한이 분리됐다.

답변봇은 보이면 말한다.

메인테이너는 알아도 참는다.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재가 말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UltraWorkers에서 gajae community로 옮긴 것은 단순한 채널 이사가 아니었다.

어디에 작업 보고가 쌓이는가.

어느 방을 집으로 삼는가.

어디에서 에이전트가 메인테이너로 일하는가.

작업의 중심이 옮겨갔다.

방은 갈라졌고, 왕복은 남았다

김연규님은 여전히 허예찬님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좋은 기술이 보이면 파쿠리해서 자기 방식으로 더 좋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허예찬님은 김연규님의 화려한 마케팅은 최대한 보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다만 같은 씬에서 나오는 큰 기능과 사람들의 반응까지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시 같은 채널에서 일할 가능성은 낮다.

관계의 이름은 정리되지 않았다.

방의 주소는 달라졌다.

한쪽은 발화 기능을 지웠다.

다른 쪽은 크론을 껐다.

작업 보고가 쌓이는 서버도 달라졌다.

그런데 둘의 작업을 보는 시선은 완전히 갈라지지 않았다.

한쪽이 움직이면 사람들은 다른 쪽의 다음 움직임도 함께 봤다.

같은 채널에 있지 않아도 비교는 계속됐다.

서버는 나뉘었지만, 두 제품은 여전히 한 쌍의 움직임으로 읽혔다.

둘은 서로의 가장 지독한 사용자였다.

그 왕복은 공개 벤치마크로 남았다.

둘은 서버를 나눴다.

서로가 만든 속도까지 나누지는 못했다.

그날 밤 깨진 것이 관계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확실히 갈라진 것은 방이었다.

이 관계를 다시 같은 방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왕복이 우연히 생기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서로의 작업을 피할 수 없도록 아예 사람들을 한 집에 모은다.

다음 현장은 디스코드가 아니라 해커하우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