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티어노트: thefutureisnowhere

그래서, 고소당했다.

그게 전부인가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1985년, 스물여섯 살의 유시민이 항소이유서 첫머리에 쓴 문장입니다.

그가 연루된 서울대 프락치 사건은 학생들이 정보기관의 프락치로 의심한 민간인들을 감금하고 폭행한 사건이었습니다. 유시민은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는 대개 무죄를 다투거나 형을 줄여달라고 청하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사건을 유무죄와 형량의 문제에만 가두지 않았습니다.

잘못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그 사건을 낳은 국가와 제도, 사회의 책임까지 모두 끝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항소이유서는 복사돼 법정 밖으로 퍼졌습니다.

훗날 정치인이 된 유시민을 세상에 먼저 알린 것은 선거 포스터가 아니라 이 항소이유서였습니다.

사건에서 벌어진 일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처벌하고도 더 물어야 할 것이 있다는 주장에 사람들이 반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저는 전혀 다른 사건을 보며 그 글을 다시 떠올립니다.

노마다마스 김동규님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건은 다릅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권력과 학생운동의 사건을, 오픈소스 개발자와 상업 데이터 회사의 분쟁과 같은 저울에 올릴 수는 없습니다. 김동규님의 행동을 정의로운 저항으로 포장할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가져오려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글의 논리입니다.

책임은 책임대로 묻되, 그것으로 모든 설명을 끝내도 되는가.

먼저 인정할 것

약 한 달 전 저는 노마다마스의 토큰 스폰서가 됐습니다.

젊은 AI 빌더들이 비용 걱정보다 만드는 일에 조금 더 오래 몰입하기를 바라며, 노마다마스에 상당 규모의 AI 토큰을 후원했습니다.

김동규님 덕분에 저도 첫 커밋과 첫 PR을 경험했습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Frontier Note 역시 해커톤과 빌더하우스에서 받은 도움과 자극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동시에 가까운 사람의 일일수록 사실을 줄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개된 저장소를 보면 이번 사건을 단순히 “사람이 보던 공개정보를 AI가 읽게 했다”라고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프리미엄 계정 하나의 접근권한으로 여러 사용자의 요청을 처리하는 구조가 있었고, 자동화 차단 이후에도 접근을 이어가기 위한 기능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계정과 권한으로 자신의 에이전트를 움직이는 것과, 하나의 유료 계정으로 여러 사람의 요청을 처리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 차이를 빼고 “인터페이스만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해서는 사건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김동규님은 무엇을 만들었고, 왜 괜찮다고 판단했으며,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 자신의 언어로 설명해야 합니다.

판단이 잘못됐다면 인정해야 합니다. 피해가 있었다면 회복하고, 앞으로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오픈소스라는 선의도, 아직 젊다는 사실도 그 책임을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저는 그 책임을 대신 지워줄 수 없습니다.

지워줘서도 안 됩니다.

여기까지가 김동규님이 답해야 할 몫입니다.

항소이유서의 질문은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이번 사건에는 이미 간단한 결론이 준비돼 있습니다.

한 개발자가 유료 서비스의 경계를 넘었다. 그래서 고소를 당했다.

틀리지 않은 문장입니다.

그래서 더 쉽게 사건을 종결시켜버립니다.

그 한 줄로 끝내면, 개인이 구매한 접근권한을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어디까지 위임할 수 있는지, 공개된 정보와 자유롭게 수집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어떻게 다른지, 기업은 에이전트가 정식으로 접근하고 비용을 낼 수 있는 경로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그대로 남습니다.

이 질문들은 김동규님에게 잘못이 없다는 근거가 아닙니다.

김동규님에게 책임을 묻고도 우리가 답해야 할 문제입니다.

AI는 한 사람에게 과거의 작은 개발 조직과 맞먹는 실행력을 주고 있습니다. 생각과 구현 사이의 거리는 짧아졌고,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은 며칠 만에 제품이 됩니다.

하지만 실행의 속도를 법과 윤리, 책임의 기준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후원한 것은 속도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 역시 사건 바깥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노마다마스에 토큰을 후원했습니다.

제가 준 것은 속도였습니다.

더 빨리 만들고, 더 많이 실험하고, 더 자주 실패할 수 있는 시간.

속도만 줬습니다.

기존 개발 조직이라면, 누군가 한 번쯤 멈춰 세웁니다. 약관을 확인하는 사람, 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선배, 배포 전에 검토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느리고 답답해 보이는 그 과정이 사람과 조직을 보호합니다.

혼자 만들면 이런 과정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AI가 구현까지 끝내주면, “할 수 있다”가 “해도 된다”로 넘어가는 데 몇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최종 책임은 구현하고 배포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빌더들에게 더 강력한 모델과 더 많은 토큰을 건넨 뒤,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는 각자 다치면서 배우라고 둘 수도 없습니다.

AI 빌더에게는 연산 비용뿐 아니라 데이터 권리와 약관, 저작권과 개인정보를 판단할 기준도 필요합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물어볼 사람과 멈춰야 할 때 멈추게 해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토큰을 건넸습니다.

이제는 가드레일도 함께 건네야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

40여 년 전 유시민은 자신의 무죄나 감형만을 구하기 위해 항소이유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이 글 역시 김동규님에게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줄여달라고 청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포용은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정확히 마주하고 필요한 책임을 다하게 하되, 그 책임이 한 사람의 삶과 가능성 전체를 끝내는 선고가 되지 않도록 돕는 일입니다.

김동규님이 이번 사건을 억울함만 남는 이야기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잘못 판단했는지 인정하고, 필요한 책임을 다하며, 자신이 겪은 일을 다음 빌더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기준으로 바꾸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책임을 다한 뒤 김동규님이 다시 무언가를 만들 때도 저는 곁에 있고 싶습니다.

법적 절차는 김동규님의 문제 된 행위를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그의 미래까지 미리 선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요구한 것은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도, 사회는 더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번 사건에서 배워야 할 것 역시,

“그래서 고소당했다”보다 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