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너무 좋아서
마찰을 설계한 사람에게, 마찰이 없던 30분
“질문이 너무 좋아서 드리고 싶은 말씀만 다 했고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강양석 대표가 말했다.
칭찬이었다. 그때도 그렇게 들었고, 강 대표가 다른 뜻으로 말한 것도 아니다.
몇 시간 뒤 전사를 다시 읽자, 그 문장은 인터뷰의 방식까지 가리키는 말처럼 남았다.
나는 며칠 전 다른 AI가 만든 글을 내 생각이라고 제출했다. 딥스킬의 논술 AI는 그 글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골라 계속 물었다. 나는 적용 범위를 줄였고, 비용을 감수할 조건을 붙였고, 어느 순간에는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고 느꼈다.
이번에는 그 마찰을 설계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물었다.
강 대표는 확신은 내용에서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깊고 복잡한 논의를 충분히 거쳤다는 경험에서 나온다고 했다.
나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고 준비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마찰을 만든 사람의 설명은, 내 다음 질문의 모양을 바꾸지 못한 채 통과했다.
5분씩, 질문 4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
준비한 것은 네 개의 질문이었다.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질문마다 5분씩 쓰자고 제안했다. 20분 동안 네 개의 질문을 모두 다룬 뒤, 남은 시간에는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을 받기로 했다.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강 대표에게는 곧 다음 미팅이 있었다. 나도 기존에 작성한 글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 인터뷰의 핵심을 빠르게 확보해야 했다. 질문을 미리 보이게 했고, 답하는 동안 주요 단어를 시트에 기록했다. 대화는 자동으로 전사됐다.
대답을 확보하기에는 좋은 구조였다.
그치만 답이 다음 질문을 바꾸기에는 좋지 않은 구조였다.
하나의 답이 길어지면 다음 질문의 시간이 줄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오더라도 그 말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준비한 네 칸 가운데 다음 칸으로 이동하게 됐다.
내가 써본 딥스킬의 논술 AI는 사용자가 충분히 답했다고 느낀 뒤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넘어갈 시간을 먼저 정해놓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거 어디서 연습하냐”
딥스킬의 출발점을 묻자 강 대표는 공동창업자들의 전략 업무와 기업 교육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데이터 도구의 사용법만이 아니었다. 데이터를 근거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함께 다뤘다. 강의가 끝나면 사람들이 찾아와 비슷한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거 어디서 연습하냐.”
강의 내용은 배웠다. 그런데 어디에서 계속 해볼 수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강 대표가 이 질문에서 발견한 문제는 더 많은 설명의 부족이 아니었다.
자기 말을 그대로 통과시키지 않고 계속 되물을 상대의 부족이었다.
강 대표는 좋은 생각 파트너를 자기 논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점검해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나에 대한 애정과 나에 대한 정확한 논리적 이해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점검해 주는 사람이 생각 파트너거든요. 근데 주변에 그렇게 잘 훈련된 사람을 보기가 어려워요.”
그가 인간의 좋은 생각 파트너를 설명하며 먼저 꺼낸 말은 애정이었다. 그러나 애정과 논리적 이해, 지속적인 점검을 함께 제공하는 상대는 흔하지 않았다.
딥스킬의 AI 튜터는 이 빈자리를 향하고 있었다.
좋은 설명문은 논박을 대신하지 못했다
딥스킬의 논술대회는 다른 AI로 초안을 만들어 제출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대학과 자격시험이 AI 사용을 차단하는 데 몰두하는 시기에, 왜 반대로 열어두었는지 물었다.
강 대표는 문장을 만드는 일과 그 문장을 반론 앞에서 지키거나 고치는 일을 서로 다른 층위의 정신 작용으로 구분했다.
그의 설명에서 좋은 설명문이 아무리 많아도, 그 자체로 논박의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좋은 논설문을 만드는 도구를 가졌다는 사실은 금지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초안이 어디서 왔는지는 결정적이지 않았다.
그 글에 붙은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글은 다른 AI가 써도 됐다.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자리에서 직접 입력해야 했다.
확신은 내용에서 오지 않는다
마찰을 왜 설계했는지 묻자 강 대표는 의사결정이라는 말부터 나눴다.
우리는 보통 좋은 내용을 확보하면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정보를 모으고, 더 나은 답을 찾으면 결정도 단단해질 것이라고 본다.
강 대표는 의사결정의 내용은 생각보다 빨리 확보된다고 말했다.
더 어려운 것은 결정이었다.
여러 가능성을 접고 한 방향을 택한 뒤, 그 방향으로 실제 움직이는 일. 그는 이 결정의 성격을 “억지스러운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좋은 의사결정의 중요한 산출물은 더 많은 내용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확신의 강도는 내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깊고 복잡한 논의를 충분히 하였는가라는 경험적 완결성에서 나옵니다.”
확신은 정답을 전달받았다는 감각이 아니었다.
중요한 반론을 지나왔고, 빠진 전제를 확인했고, 고려할 조건을 충분히 고려했다는 감각이었다. 이제 이 판단으로 움직여도 된다는 상태였다.
강 대표의 설명대로라면, 딥스킬이 만들려 한 것은 답을 더하는 도구보다 그 답을 행동 가능한 판단으로 바꾸기 위해 생각을 저항에 노출시키는 환경에 가까웠다.
강 대표는 마찰에 대한 설명을 문명과 사상으로까지 넓혔다.
“모든 문명과 모든 사상과 모든 문화는 대단히 억지스럽고 조작적인 개념의 연결에 의해서 나왔습니다.”
바깥에서 들으면 과한 말이었다.
마찰을 설계하는 팀의 설명 안에서는 결정과 문명이 같은 방향에 놓였다.
해볼 거 다 해봤다는 느낌
AI와 의사결정을 잘했을 때 무엇이 남아야 하는지 묻자 강 대표는 다시 확신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확신을 일상적인 말로 풀었다.
“해볼 거 다 해봤다. 점검할 거 다 점검해봤다.”
생각을 오래, 여러 방향으로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이 온다고 했다.
“아, 이쯤하면 고려할 건 다 고려한 것 같다.”
강 대표가 말한 상태는 점수가 아니었다.
좋은 문장도 아니었다.
더 물어야 할 중요한 것이 남지 않았다고 사고하는 사람이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 상태를 먼저 확신이라고 불렀다. 다만 그 확신을 생활어로 풀어내는 순간에는 정확히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개념어보다 오래 남은 표현은 ‘해볼 거 다 해봤다는 느낌’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며칠 전 논술 AI의 답변창에 남긴 문장이 떠올랐어야 했다.
“내가 아까 이미 그 얘기했잖아.”
나는 이미 적용할 직무를 좁혔고, 새 검증 비용을 감수할 조건도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해볼 것을 다 해봤다는 느낌이 와 있었다.
하지만 AI 튜터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강 대표가 의사결정 뒤의 핵심 산출물이라고 부른 감각은, 실제 공방에서 시스템의 종료보다 먼저 내게 도착했다.
그렇다면 그 느낌은 누구의 것일까.
사고하는 사람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순간 도착한 것인가.
질문하는 튜터가 더 이상 묻지 않을 때 비로소 도착한 것인가.
이 질문은 인터뷰가 끝난 뒤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강 대표의 답 안에 이미 있었다.
나는 준비한 다음 칸으로 갔다
이 대목에서 나는 강 대표의 말을 다시 흔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을 한 번 더 정리해줬다. 마찰은 생각하는 기술을 진화시키는 요소이고, 논박을 거치는 과정이 사고를 발전시킨다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딥스킬의 철학이 제품에 잘 녹아 있어 실제 대회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다음에 다음 질문이…”
전사에는 내 반응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공감이 된다.
어프로치가 좋다.
재미있다.
질문 자체가 무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좋은 질문과 실패한 질문의 경계를 물었다. AI와 대화한 뒤 무엇이 남아야 실력이 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물었다.
문제는 질문의 내용보다 질문 사이의 움직임에 있었다.
강 대표가 중요한 전제를 내놓아도, 그 답이 다음 질문의 형태를 바꾸지는 못했다. 나는 답을 이해했고, 내 경험과 연결했고, 준비한 다음 칸으로 갔다.
인터뷰가 반드시 공방일 필요는 없다. 30분짜리 인터뷰에 튜터 세션과 같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도 과할 수 있다. 답을 충분히 펼치게 하는 것은 인터뷰의 정당한 일이다.
다만 강 대표의 구분을 이 인터뷰에도 적용해보면, 이 대화에서 확보한 것은 아직 설명에 가까웠다.
나는 충분히 되묻지 않은 설명을 독자에게 건네려 했다.
며칠 전 AI의 완성된 문장을 먼저 받아들인 일과 닮아 있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사람이었다.
그때 더 물었어야 했던 것
좋은 질문을 객관적으로 가를 수 있느냐고 묻자 강 대표는 매우 엄격한 기준이 있다고 답했다. 논증학 안에는 주장과 증거, 숨은 가정의 관계를 점검하는 체계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논증학의 체계가 흥미롭다고 말했다.
여기서 다시 물었어야 했다.
질문의 품질은 객관적인 논증 기준으로 판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해볼 것을 다 해봤다는 느낌’이라는 주관적 감각은 그 객관적 기준과 어떻게 연결됩니까?
또 물었어야 했다.
충분히 검토했지만 결국 틀린 판단과, 검토를 거치며 실제로 더 견고해진 판단은 무엇으로 구분합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실제로 겪은 장면을 그대로 돌려줬어야 했다.
사용자는 이미 충분히 답했다고 느꼈고 튜터는 계속 물었습니다. 그 느낌이 도착한 시점을 판정할 권한은 사고하는 사람에게 있습니까, 질문하는 튜터에게 있습니까?
이 질문들은 인터뷰 뒤에 새로 발명된 것이 아니다.
강 대표의 답 안에 이미 들어 있었다.
다만 그의 답이 다음 질문을 바꾸게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나오지 못했다.
질문이 너무 좋아서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을 때 강 대표는 말했다.
“질문이 너무 좋아서 드리고 싶은 말씀만 다 했고요.”
그 말은 칭찬이었다.
강 대표가 자기 이론의 모순을 고백한 것도 아니고, 내가 충분히 반박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도 아니다.
다만 전사를 다시 읽은 내게는 다른 질문을 남겼다.
말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말한 인터뷰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생각한 인터뷰는 같은가.
질문이 좋다는 말은 답변자가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었다는 뜻일 수 있다.
그 답이 질문하는 사람의 다음 질문을 바꿨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다.
그 뒤에는 역할이 잠시 뒤집혔다.
강 대표가 프론티어노트를 왜 하는지 물었고, 이번에는 내가 길게 말했다. AI 최전선에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장면을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는 과정을 내 성장의 외부 엔진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고 답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잘 정리된 설명을 건넸다.
인터뷰는 매끄럽게 끝났다.
마찰은 전사에 남았다.
헤어지기 전 강 대표가 먼저 제안했다. 다음에는 오프라인에서 더 길게 이야기해보자고.
다음에는 네 개 질문을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
하나의 답을 붙잡을 생각이다.
그 답이 다음 질문을 바꾸는 순간까지 머물러보려 한다.
첫 질문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해볼 것을 다 해봤다는 느낌이 먼저 도착했는데, 질문하는 쪽이 아직 아니라고 말할 때, 누가 이 대화를 끝낼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