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티어노트: thefutureisnowhere

좋아요. 다만

질문이 답을 바꿨다면, 답도 다음 질문을 바꿔야 했다

질문이 답을 바꿨다면, 답도 다음 질문을 바꿔야 했다

문답을 주고받는 동안에는 다만만 들렸다. 대화가 끝난 뒤 로그를 다시 읽으니, 그 앞의 좋아요가 보였다.

딥스킬의 논술 AI는 대체로 비슷한 순서로 답했다. 먼저 내가 잘 짚은 부분을 말했다. 적용할 직무를 좁힌 점을 인정했고, 잘못된 채용의 손실이 개인 성과 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설명도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다만, 이제, 지금 남은 건 같은 말로 다음 질문을 붙였다.

문답 중에는 다음 질문에 답하느라 앞의 인정이 금방 사라졌다. 로그를 멈춰놓고 읽어야 무엇이 받아들여졌고, 무엇을 더 요구했는지가 조금씩 보였다.

같은 박자로 도착한 질문들이 모두 같은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논증 지도는 있었다

초안을 제출하자 글은 상자와 화살표의 지도로 돌아왔다. 중심 주장과 근거, 예상 반론이 어디에 놓였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논술 AI가 내 글을 어떻게 읽었는지도 화면에 드러났다.

문답이 시작된 뒤에도 진행 정보는 있었다. 화면 한쪽에는 질문의 제목과 대화 횟수가 보였다. 어떤 논점을 몇 번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다만 어떤 판단이 받아들여졌고, 무엇이 아직 남았는지는 논증 지도처럼 한눈에 보이지 않았다. 질문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보였지만, 내 답이 다음 질문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는 계속 짐작해야 했다.

질문은 실제로 답을 바꿨다

첫 초안의 주장은 넓었다. 특수하거나 규제가 필요한 일부 직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채용에서 학위 요건을 없애자는 쪽이었다.

논술 AI는 학위가 좋은지 나쁜지를 다시 묻지 않았다. 대신 학위 대신 도입할 프로젝트 기반 검증에도 비용이 든다고 짚었다. 평가자가 시간을 써야 하고, 과제를 설계하고 채점해야 한다. 지원자가 중간에 이탈할 수 있고, 채용 속도도 늦어질 수 있었다.

이어 이런 질문이 왔다.

“최소한 어느 직군에서 조기 퇴사와 재채용, 프로젝트 지연 감소분이 프로젝트 기반 채용 비용을 넘는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초안에서 건너뛴 비용을 끌어냈다.

답을 이어가며 적용 범위가 줄었다. 대부분의 직무가 아니라 미스핏 비용이 큰 직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 직무인지 묻자 AI 운영 최적화, 자동화 업무를 골랐다. 이 직무의 실패는 한 사람의 낮은 성과로 끝나지 않고 고객 프로젝트 지연과 운영 병목, 회사의 신뢰 하락으로 번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문을 지날 때마다 처음의 넓은 주장에 조건이 붙었다.

대부분의 직무
→ 미스핏 비용이 큰 직무
→ AI 운영 최적화, 자동화 직무
→ 실패가 고객 프로젝트 손실로 번지는 직무

이 구간에서 질문은 분명히 답을 바꿨다. 내가 처음부터 갖고 있던 방향을 그대로 받아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적용할 범위와 비용을 감수할 조건까지 말하게 했다.

답은 다음 질문을 어떻게 바꿨나

어느 지점부터 판단의 내용은 더 달라지지 않았다. 적용할 직무는 같았고, 미스핏 비용이 고객 프로젝트 손실로 번진다는 이유도 같았다. 채용 지연보다 검증 강화의 편익이 크다는 판단 역시 그대로였다.

그런데 같은 비용 논점은 계속 이어졌다. 논술 AI는 새 검증의 부담보다 어떤 손실이 더 큰지 다시 물었고, 손실이 큰 직무만 골라 검증을 강화한다는 기준을 글에 분명히 넣어보라고 했다.

나는 이미 같은 뜻을 말했다고 느꼈다.

“내가 아까 이미 그 얘기했잖아.”

로그를 다시 보면 논술 AI가 앞선 답을 전혀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직군을 잘 골랐다고 했고, 범위를 좁힌 점도 인정했다. 다만 앞부분의 질문이 새로운 조건을 끌어냈다면, 뒤의 질문은 여러 답에 흩어진 조건을 한 편의 글에 들어갈 설명으로 모으는 쪽에 가까워졌다.

직군은 한 답에 있었고, 손실의 성격은 다른 답에 있었다. 비용 비교는 다시 다른 답에 나뉘어 있었다. 대화에서는 뜻이 통할 수 있었지만, 독자가 읽을 글 안에서는 이 내용을 한데 모아야 했다.

앞에서는 새로운 판단을 요구했다. 뒤에서는 이미 나온 판단의 관계를 더 분명하게 쓰게 했다.

질문이 하는 일은 달라졌다.

말투는 그대로였다.

좋아요. 다만.

좋아요는 어디에 남았나

문답 중인 나는 그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 요구가 모두 답의 일부를 인정한 뒤 다음 질문을 붙이는 형식으로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판단을 요구받는지, 이미 한 말을 글에 맞게 다시 정리하라는 것인지 같은 박자 안에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논술 AI는 매번 무엇인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음 질문이 도착하면, 방금 인정한 내용이 어디까지 다음 대화의 전제로 남았는지 다시 추정해야 했다. 그래서 좋아요는 접수 표시라기보다 다음 다만을 꺼내기 위한 서두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질문 제목과 대화 횟수는 보였다. 그러나 앞선 답에서 무엇이 받아들여졌고, 무엇이 아직 더 필요한지는 논증 지도처럼 한눈에 확인하기 어려웠다.

적용할 직무: 충분히 설명됨
손실이 번지는 경로: 충분히 설명됨
새 검증 비용과의 비교: 추가 설명 필요

이런 표시가 있었다면 대화가 더 좋아졌을지는 알 수 없다. 이번 한 번의 로그만으로 제품의 답을 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반복이라고 느낀 이유가 질문의 내용에만 있지는 않았다는 점은 남았다.

무엇을 물었는지는 보였다. 앞선 답에서 무엇이 받아들여졌는지는 계속 짐작해야 했다.

다만이 앞으로 가려면

처음에는 내 생각만 시험대에 오른 줄 알았다. AI가 먼저 만든 문장 가운데 어디까지가 내가 설명할 수 있는 판단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질문은 실제로 내 답을 바꿨다. 대부분의 직무라는 넓은 말에는 적용 범위가 생겼고, 전략적 투자라는 문장에는 어떤 비용까지 감수할지 기준이 붙었다. 사용자를 쉽게 넘어가주지 않는 질문은 초안에서 건너뛴 곳을 찾아냈다.

로그를 끝까지 읽고 나니 반대 방향도 보였다.

티는 참가자에게만 나는 것이 아니었다. 앞선 답이 다음 질문에 얼마나 남았는지도 대화에서 드러났다.

내 생각이 질문을 통과해야 했듯, 질문도 내가 한 답을 통과해야 했다.

좋아요에서 받아들인 것이 다음 질문에 남을 때, 다만도 비로소 앞으로 간다.